여행을 하며

영월 단종의 비애 청령포와 세계문화유산 장릉

晩松 2015. 8. 27. 10:26

 

청령포 :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던 곳이다.

명승 제50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457(세조 3) 6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겼다.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워낙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종이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남아 있다. 단종은 그해 10월 관풍헌에서 17살의 어린나이에 숨졌다.

197112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12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조선 제6대 왕 단종(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으로 정해졌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 단종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관련된 것들이다.

 

 

 

 

 

 

 

 

 

 

 

 

 

 

 

 

영월호장 엄흥도 초상화와 엄흥도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