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 센고쿠 시대 이시야마 혼간지와 그 절안에 위치한 마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을 개시했다.
완성에 1년반이 소요된 혼마루는 이시야마 혼간지터에 조성되었고, 천수는 옛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외관은 5층5계이다. 그리고, 기와등에 금박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했다.
히데요시의 임종이 있기까지 니노마루, 산노마루에는 소가마에를 건설해 3중의 해자와 운하가 있는 견실한 성으로 완성되었다.
한창 오사카 성을 축성할 때 히데요시를 방문한 오토모 소린이 성 주위를 둘러보고는「오사카 성은 삼국무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축성자로 있는 히데요시 자신은 교토에 주라쿠다이, 후시미 성을 차례차례 축성하고, 오사카보다는 주로 교토에 머물렀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1599년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후시미 성에서 오사카 성의 혼마루로 이주한다. 또, 정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고타이로(五大老)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오사카 성의 니노마루로 옮겨와 정무를 보아온다.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후에도 히데요리는 오사카 성에 머물면서 셋쓰를 지배했지만, 1614년 오사카 성 겨울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이끄는 군의 공격을 물리친다. 그리고, 소마에와 산노마루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지만, 니노마루의 외측 해자까지 매우게 되었다.
오사카 성은 내측 해자와 혼마루만 남는 벌거벗은 성이된다.
히데요리는 외측 해자를 다시 만들었기 때문에 강화는 파기되어 겨울전투로부터 4개월 후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이때 혼마루는 소실되고, 도요토미씨는 멸문되었다.
오사카성 천수각은 8층으로 되어 있으며 3~4층은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다.
천수각 안내실
현재 오사카와 오사카 성의 상징인 천수각은 1928년 당시 오사카 시장인 세키 하지메가 재건 할 것을 주창해, 1931년성을 준공했다.
1930년대 이후 각지에 건설된 복원천수 1호였다.
건물은 도쿠가와 오사카 성 천수대를 기반으로 철골콘크리트로 건설되었다.
천수각의 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외관은 옛 그림을 토대로 새롭게 재탄생 되었다.
오사카 성의 천수는 도요토미의 오사카 성과 도쿠가와의 오사카 성과는 건설된 장소도 외관도 전혀 다르지만, 복원된 천수각에서는 1층부터 4층까지 도쿠가와의 풍으로 백색인 회벽으로 하는 한편, 5층에서는 도요토미의 풍으로 흑색에 금박으로 호랑이와 두루미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고, 도요토미 형식으로 전부 통일해야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성을 대폭 개수했다. 이 시기, 구조는 한신·아와지 대지진에 해당하는 진도를 견딜수 있게 보강되었고, 외관의 벽도 다시 칠해졌다.
상처난 처마의 기와와 샤치호코, 귀면기와의 금박도 다시 입혀졌다.
또, 단체관광객과 신체장애자의 편의를 위해 승강기의 운행구간을 연장했다.
1997년 일본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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