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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숭례문)

晩松 2011. 8. 19. 14:13

 


서울 성곽 4대문 가운데 왜 숭례문(남대문·사진) 현판만 세로로 쓰여 있을까"#0000ff">공손한 자세를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도 하고,
서울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해 그렇게 썼다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현판 글씨는 태종 이방원의 큰아들로 한때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우진각지붕 다포(多包)집이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라서 통칭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불린다

1394년(태조4년) 창건되었으나 지금의 건물은 1447년(세종29년)에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61∼1963년에 있었던 해체, 수리에 의한 조사에서
1479년(성종10년)에도 비교적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 문은 중앙부에 홍예문(虹霓門)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 위에 섰으며,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석축 윗면에는 주위에 높이 1.17m의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건물의 외주(外周) 바닥에는 판석(板石)을 깔았다
주)홍예문(虹霓門):문의 윗머리가 무지개의 형상처럼 반쯤 둥글게 된 문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 윗면인 중앙간(中央間)만을 우물마루로 하고 나머지는 흙바닥이다
지붕은 위·아래층이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머리[龍頭]
그리고 용마루 양가에는 독수리머리를 올렸다

이 건물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성문이기 때문에 천장을 가설할 필요가 없어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특기해야 할 것은 이 건물의 지붕형태가 어느 시기에 변경된 것인지 뚜렷하지 않으나
당초에는 평양 대동문 또는 개성 남대문과 같은 팔작지붕이었다는 것이 해체, 수리 때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숭례문의 야경
천정그림

이럴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0" hspace="5" alt="" vspace="5" src="../images/w6gSzNEKd0HDqxmU9tu2KA.jpg" width="700" height="456">
2008년 약 614년 만에 人災로 인해生을 다하는 숭례문
처참하고 안타깝다

아프다..!

but...................!
할말이 없다!

 

좋은 자료들 야후에서 사라저 버렿다.